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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South Africa)

남아공 여행 ① 남아공 국민들의 날 것 그대로의 삶 ‘요하네스버그’


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은 26년간의 옥중생활을 이겨내고 국민투표를 거쳐 당선된 최초의 남아공대통령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와 2010년 월드컵 개최국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낯선 나라다. 물론 정치나 역사에 좀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악명 높았던 인종분리정책(Apartheid)과 그 반대의 선봉을 섰던 또 한 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Desmond Mpilo Tutu)’ 대주교도 알고 있겠지만, 여전히 차별과 억압이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모를지도 모른다.

 

남아공의 굴곡진 현대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하네스버그(Johanesburg)를 가야 한다. 아름다운 유럽풍 도시 ‘케이프 타운(Cape town)’, 생생하게 야생동물을 목격할 수 있는 ‘크루거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 그리고 서핑의 천국 ‘더반(Durban)’이 관광지로서 더 유명하지만, 요하네스버그만큼 ‘남아공 국민들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는 도시는 그 어디에도 없다. 1880년대 골드러시 여파로 생성된 이 도시는 한 때 엄청난 부를 쌓으며 남아공의 경제수도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이후 계속된 인종차별, 빈부격차,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로 인해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과연 요하네스버그의 영화는 여기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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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하네스버그에서 주의해야 할 네 가지

 

내가 요하네스버그를 찾은 것은 5월, 여행하기 딱 좋은 시기이다. 그 때문인지 서울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요하네스버그까지 꼬박 16시간을 날아가는 비행편도 거의 만석이다.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할 때쯤 시야에 들어온 시가지는 여느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호스텔로 향하는 도로 역시, 아직까지는 내가 아프리카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하다. 잘 정비된 도로, 깔끔한 도로 표지판, 그리고 말끔한 유럽풍 전원주택까지, 그 어디에도 위협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요하네스버그를 첫번째 기착지로 결정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 여러 여행관련 가이드북이나 웹사이트는 물론이고, 심지어 남아공 사람마저도 요하네스버그를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남아공 현대사의 격동의 무대였던 이 곳을 반드시 들르겠다는 의견을 반복적으로 피력하고 나서야, 그들은 내게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 샌튼(Sandton), 멜빌(Melville)과 같이 치안이 보장되는 지역 이외에는 여행하지 말 것, 둘째 시내 대중교통 이용을 삼갈 것, 셋째 주중 낮 시간 이외에는 시내에 가지 말 것, 넷째 절대 혼자 다니지 말 것을 권고했다.

 

안타깝게도 첫번째 충고는 지킬 수가 없었다. 샌튼과 멜빌 지역의 숙소는 너무 비쌀 뿐더러 시내와의 거리 또한 멀어, 결국 결정한 곳이 치안이 그다지 나쁘지 않으면서 시내 주요 명소와도 멀지 않은 옵저버토리(Observatory) 지역의 ‘브라운 슈거 백패커스(Brown Sugar Backpackers)’다. 다행히 두 번째 충고는 호스텔 무료 픽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지킬 수 있었지만, 금요일 오전에 도착한 탓에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의까지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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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닌 탓에 호스텔에는 투숙객이 많지 않다. 내가 묵게 될 도미토리에는 오직 두 명이 더 있을 뿐이다. 이란에서 온 무하메드(Muhammed)와 독일인 피터(Peter)는 요하네스버그에서 직장을 찾는 중이다. 이 곳에 도착한 지 이제 겨우 사나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들로부터 여행 정보를 얻기는 불가능했지만, 다행인 점은 피터가 자가용이 있으며, 이들 모두 제대로 시내를 둘러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설득해 시내로 향한다. 믿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가이드북이 전부인지라, 우선 6미터 만델라 동상이 있는 샌튼 지역이 첫 번째 행선지다.

 

◆ 요하네스버그의 두 얼굴 ‘북부와 남부’

 

도시 북부에 위치한 샌튼 지역은 예상대로 고급 호텔들과 근사한 레스토랑이 가득한 일종의 쇼핑 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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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옵저버토리 지역과는 달리, 무리 지어 이동하는 관광객들과 이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현지인들이 유럽 여느 도시의 느낌 그대로다. 이 곳의 명물인 만델라 동상은 만델라 광장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활짝 웃는 표정의 만델라 전 대통령 동상은 사실 대단한 예술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워낙 상징적인 의미가 커서인지 그 옆에 서는 것만으로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만델라 광장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고, 도시 남부에 위치한 인종분리정책박물관(Apartheid Museum)으로 가는 도중에,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한 ‘아프리카의 정상(Top of Africa) 전망대’에 들른다. 성 금요일(Good Friday)인 탓에 시내는 한산하다 못해, 낮임에도 불구하고 으스스한 느낌마저 풍긴다. 교차로마다 무리 지어 있는 흑인들은 한산한 도심을 지나가는 자가용이 의외인 양 뚫어지게 응시한다. 아프리카의 정상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이란인, 독일인은 분명 그들에게 이방인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가 잠시 전망대에 머무는 동안에도 수많은 흑인들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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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담스러운 시선에 무하메드가 위협을 느낀 모양이다. 피터 역시 박물관에 큰 관심이 없던 터라 결국 인종분리정책박물관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이스트게이트 쇼핑몰(East Gate Shopping Mall)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거리. 산책도 할 겸 숙소에 차를 두고 유유자적 걸어본다. 차이나타운을 지나 도착한 브루마 호수(Bruma Lake)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산업형 다리와 강가를 에워싼 모던한 느낌의 맨션들은 한 시간 전 ‘아프리카의 정상’에서 바라본 시멘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심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좀 더 목가적이고, 여유로움이 묻어난다고 할까?

 

◆ 대형 쇼핑몰과 벼룩 시장

 

이스트게이트 쇼핑몰은 우리네 쇼핑몰과 전혀 다르지 않다. 수많은 의류매장과 대형할인매장, 그리고 각종 전자제품매장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는 종합 쇼핑몰이다. 과일이나 간식 말고는 특별히 살 게 없었던 나로서는 쇼핑 자체가 지루했다. 그래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던 건 이들과 함께 인근에 위치한 브루마 아프리카 벼룩시장(Bruma African Flea Market)을 가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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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버그 최대 벼룩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기다란 노점 행렬이 거리를 잔뜩 메우고 있는 이 곳에는 각종 아프리카 공예품부터 과일에 이르기까지 그 품목도 쇼핑몰 못지 않다. 돌이나 나무 조각품, 아프리카의 일상을 그린 아마추어 화가들의 유화, 형이상학적 문양이 새겨진 아프리카 전통 악기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내 선택은 색깔이 입혀진 철사로 만든 동물모양의 열쇠고리다. 앙증맞은 얼룩말과 노란 색 기린 한 마리를 손에 쥐고서야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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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쇼핑몰로 갈 때보다 현지인들을 자주 목격했다. 행선지조차 적혀 있지 않은 미니버스택시(minibus taxi)에는 나머지 빈자리가 어서 빨리 채워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료함이 느껴진다.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살펴보던 이들은 우리가 그대로 지나가자,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두세명씩 무리 지어 다니는 젊은 친구들도 보인다. 마치 엑스레이를 찍듯 위아래로 훑어보는 모습에 우리 모두 긴장 모드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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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단침입에는 총기응사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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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이스트게이트 쇼핑몰로 가기 전 호스텔에서 일을 돕던 흑인 현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그에 따르면 남아공 실업률은 공식자료상의 수치 23.5%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특히 흑인들의 경우 절반 이상이 실직 상태이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각자의 직종을 알 수 있는 색깔의 작업복(예를 들어 흰색작업복은 미장)을 입고 교차로에서 언제 지나갈 지 모르는 픽업차량을 기다리는 일이다. 이들 중 극소수만이 픽업되다 보니, 자연스레 범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현상이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이 대외적으로 큰 관심을 끌게 되면서 비롯됐다는 것. 그는 1987년경 선진국들이 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에 맞서 대남아공 투자철회를 선언하고, 이스트먼 코닥, 코카콜라, GM, IBM을 비롯해 무려 200여개 이상의 기업들이 동참하면서 실업률이 급속히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비안간적인 인종분리정책은 비록 역사의 뒤안길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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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은 남아공 흑인들의 삶이 15년전과 비교해 얼마나 개선됐다고 생각합니까?”

 

 그의 견해를 입증이라도 하듯, 옵저버토리 대로(Observatory Avenue)에 위치한 대형 맨션들 출입구에는 영어와 아프리카어로 쓰여진 경고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총기로 맞대응 할 것입니다(armed reaction)’,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와보시오(Enter at your own risk)’, ‘전류가 흐르는 담장(electrified fencing)’. 우리 셋은 이 경고문들을 보고 웃으면서도, 가슴 한 편으로는 이 한 마디 한 마디가 던져주는 메시지에 몸서리를 쳤다. <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