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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South Africa)

남아공 여행 ⑤ 완벽한 휴가를 꿈꾸는 이들의 선택, ‘포트 엘리자베스’



아공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포트 엘리자베스(Port Elizabeth)는 완벽한 휴가를 꿈꾸는 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다. 일년 내내 영상 25°C 안팎에 이르는 아열대성 기후와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썬탠을 하든, 하이킹을 하든 최적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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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등급 수질을 자랑하는 해변

눈부시게 투명한 해변도 포트 엘리자베스의 자랑거리다. 무려 40km에 이르는 기다란 해변은 수질, 환경교육 및 정보 제공, 환경관리 그리고 안전성에서 우수한 해변에만 제공되는 블루 플래그(Blue Flag) 인증을 획득,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경사가 완만한 흄우드 해변(Humewood beach)의 모래사장은 바다 수영이 무서운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도전할 만한 장소다. 안타깝게도 내가 찾았던 5월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데다가, 파도까지 제법 높은 편이어서 바다 수영을 시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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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 대신 킹스 비치(King’s beac) 인근의 비치프론트 벼룩시장(Beachfront flea market)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요하네스버그의 브루마 아프리카 벼룩시장이나 더반의 빅토리아 거리시장에 비하면 사실 조그마한 상점 수준이지만, 가격은 거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참고로 내가 샀던 조그마한 조각상-나무 토막 중앙에 검은 대리석이 박힌 여인상-은 겨우 20란드(약 3,200원)였다. 이 곳에서 파는 제품들은 팔찌, 목걸이와 같은 여성용 악세서리, 나무로 만든 주방용품, 그리고 돌 혹은 나무조각품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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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익스트림 스포츠의 천국

포트 엘리자베스는 해안 도시답게 수많은 해양 스포츠로도 유명하다. 서핑, 스노콜링, 스쿠버 다이빙, 바다낚시, 윈드서핑, 카이트보딩, 요트는 물론, 베이월드(Bayworld)의 오셔너리엄(Oceanarium)에서는 상어와 함께 수영할 수 있는 아찔한 기회도 제공된다.

그 중 단연 최고의 인기 종목은 화려한 산호초 지대와 열대어, 그리고 난파선 탐사까지 가능한 스쿠버 다이빙이다. 오픈워터 코스 수강료나 펀 다이빙 비용이 태국이나 이집트에 비해 3배 가량 비싼 편이지만-펀 다이빙 비용은 약 200US달러임- 세계 최고의 스쿠버 다이빙 체험지 중 하나인 벨 보이(Bell Buoy)나 버즈 아일랜드(Birds island)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스쿠버 다이빙 샵에서 만난 한 호주인으로부터 하루 만에 펭귄, 돌고래, 밍크고래, 그리고 환상적인 정어리 군무까지 모두 경험했다고 말을 듣고 거의 카드를 긁을 뻔 했지만, 당일 오후에는 다이빙 일정이 없어 하루 더 기다려야 된다는 말에 겨우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 싸이클링, 사파리 투어, 가든 루트 여행에도 안성맞춤

바다보다 산이 좋은 사람들에게도 포트 엘리자베스는 완벽한 선택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하이킹 코스는 바켄스강(Baakens River)을 끼고 가는 23km 코스와 스왓콥스 계곡 자연보호 구역(Swartkops Valley Nature Reserve)을 따라 한바퀴 돌아오는 22km 코스. 그다지 부담스러운 거리가 아닌 탓에 가족단위로 싸이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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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뛰노는 야생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사파리 투어도 가능하다. 북쪽으로 7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애도 코끼리 국립공원(Addo Elephant National Park)은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며, 스코시아(Schotia), 샴와리(Shamwari), 크라가 카마(Kragga Kamma) 등 많은 사설 야생보호동물구역(Private Game Reserve) 역시 광활한 평야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약 4시간짜리 오전 투어가 300란드(약 45,000원), 아침부터 약 14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하루 투어 코스가 800란드(약 12만원) 수준이니, 결코 비싼 편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인 가든 루트(Garden Route)를 시작하는 곳으로도 이 곳 포트 엘리자베스는 안성맞춤이다. 가든 루트의 동쪽 종착역인 플리튼버그 베이(Plettenberg bay)까지는 무려 170km 가량 떨어져 있지만, 남아공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면적 기준)답게 어디서든 쉽게 캠핑카를 빌릴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게다가 세계 최고의 서핑 스팟(surfing spot)인 제프리스 베이(Jeffrey’s bay)가 포트 엘리자베스와 플리튼버그 베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니, 잠시 쉬어가기에도 편리하다. 실제로 이곳에 묵는 동안 가든 루트를 따라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캠핑카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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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여행의 백미 ‘돈킨 문화유적답사’

바다, 산, 야생동물, 그리고 드라이브조차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나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포트 엘리자베스는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발견한 포루투칼의 바톨로뮤 디아즈(Bartholomew Diaz)가 1488년 배를 정박했던 곳이며, 그 후 수백년동안 인도양을 지나 대서양으로 향하던 선박들에게 신선한 물과 식량을 공급하는 요충지로 이용돼 왔다. 영국 점령 시절에는 프레데릭 요새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지속적인 유지 보수 덕분에 아직까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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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주요 문화유산 및 역사유적지를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곳에 처음 발을 디딘 영국인들의 발자취를 직접 따라가보는 ‘돈킨 문화유적답사(Donkin Heritage Trail)’다. 지도만 하나 있다면-시립 여행안내소에서 지도를 무료로 얻을 수 있음- 가이드 없이 거리의 표지판만으로도 충분히 혼자 둘러볼 수 있어 편리하다. 출발점으로는 시청과 공공도서관이 있는 부이실레 미니 스퀘어(Vuyisile Mini Square)-마켓 스퀘어(Market square)에서 이름이 변경됨-가 최적이다.

부이실레 미니 스퀘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아름다운 시계탑이 돋보이는 콜로니얼 양식(colonial-style)의 시청사다. 1858년과 1862년 사이에 지어진 이 건물은 건축적 가치를 인정 받아 1973년 남아공 국가기념물로 지정됐으나, 1977년의 화재로 크게 손상돼 1981년에 재건됐다고 한다. 시청 한 편에는 포르투갈 정부가 바톨로뮤의 알고어 베이(Algoa Bay) 정박을 기념하기 위해 기증한 디아즈 십자가(Diaz Cross)의 복제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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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실레 미니 스퀘어 북서쪽 코너에 있는 근사한 건물은 공공도서관이다. 전형적인 빅토리안 고딕 양식-건물 앞 동상의 주인 역시 빅토리아 여왕임-의 이 건물은 1854년 이후 법원으로 사용되다가, 1902년부터 공공도서관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황토빛을 띠는 정면의 테라코타(terra-cotta)도 매력적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이 건물의 하일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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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옆 플레밍 스퀘어(Fleming Square)로 자리를 옮기면, 전설적인 동방정교회의 지도자인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을 기념하는 십자가가 있다. 켈틱 십자가(Celtic cross)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커다란 서클이 추가된 콥틱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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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tic cross) 형태의 이 기념비에는 독특하게도 프레스터 존과 남아공을 발견한 포르투갈 항해사가 중앙 서클을 채우고 있다.

플레밍 스퀘어 서쪽으로 난 캐슬 힐 로드(Castle Hill Road)의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거지인 ‘넘버 세븐 캐슬 힐 박물관(No 7 Castle Hill Museum)’을 찾아본다. 19세기 중반 이 곳에 살던 영국 중산층 가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이 박물관에는 당시 사용되던 목판 바닥과 기둥들은 물론, 슬레이트 지붕까지 그대로 복원돼 있다. 크게 감탄할 만한 전시물은 없지만, 초기 빅토리아 시대의 가구들과 각종 가정용품들은 제법 인상적이다.

다시 부이실레 미니 스퀘어로 돌아와, 돈킨 문화유적답사의 하일라이트인 ‘돈킨 리저브(Donkin Reserve)’에 오른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돈킨 리저브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생뚱 맞은 피라미드와 하얀 색 등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뭔가 이집트와 관련이 있겠거니 하고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이 피라미드는 케이프 식민지(Cape Colony)의 주지사였던 루페인 돈킨(Rufane Donkin) 경이 죽은 부인 엘리자베스 돈킨(Elizabeth Donkin)을 위해 세운 기념비일 뿐, 파라오가 묻혀 있는 묘지는 아니다. 인상적인 것은 이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다.

“아래 보이는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헌사한,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 중 하나였던 사람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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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벤치에 앉아 눈 아래 펼쳐진 알고어 베이를 감상한다. 지대가 높지 않아 기대만큼의 풍경이 펼쳐지지는 않지만, 잠시나마 편안하게 포트 엘리자베스의 눈부신 태양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돈킨 리저브 옆으로 길게 나 있는 돈킨 스트릿(Donkin street)에는 본래의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복원된 집들이 눈 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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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킨 스트릿을 따라 북쪽으로 10분 정도 걷다 보면 눈앞에 초록의 정원이 펼쳐지는데, 이 곳이 포트 엘리자베스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세인트 조지 공원(st. George’s park)이다. 이국적인 식물들을 볼 수 있는 빅토리안 피어슨 식물원(Victorian Pearson Conservatory)이나 조지6세 박물관 및 미술관(The King George VI Art Museum and Gallery)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날씨가 너무 좋은 탓에 결국 좀 더 걷기로 결정한다.

말 기념비(Horse Memorial)는 세인트 조지 공원에서 3~4분 거리에 있다. 러셀 로드(Russell Rd)와 케이프 로드(Cape Rd) 모퉁이에 있는 이 기념비는 남아공화국 전쟁(1899-1902) 때 죽은 말과 그에게 여물을 먹이는 병사의 모습이 조각돼 있는데, 새겨진 글귀가 긴 여운을 준다.

“국가의 위대함은 인구 숫자나 국토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해하는 마음의 크기와 정의로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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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바칸 강 입구에 위치한 프레데릭 요새(Fort Frederick)로 향한다. 영국 왕자(Duke of York) 프레데릭의 이름을 따서 1799년 지어진 이 요새는 원래 프랑스군을 저지하기 위해 지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을 지키고 있는 28개의 대포는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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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킨 문화유적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캠퍼닐리(Campanile)를 찾으려면 이제는 해변가로 나가야 한다. 알고어 베이로 나와 동쪽으로 걷다 보면, 엉뚱하게 고가도로 옆에 세워진 아름다운 붉은빛 종탑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곳이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가장 훌륭한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는 캠퍼닐리다. 높이 50m가 넘는 이 종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총 204개의 계단을 걸어 오를 체력이 필요하다. 심호흡까지 하며 입구로 가보지만, 이미 문이 닫힌 상태다. 어이 없게도, 캠퍼닐리는 영업 시간이 오후 2시까지였다.

아이들과 같이 여행중이라면 흄우드 해변에 있는 베이월드를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연사 박물관, 거대한 비단뱀이 있는 뱀공원(Snake park), 유영중인 돌고래와 물개를 물 속에 위치한 관람실에서 볼 수 있는 오셔너리엄, 그리고 펭귄은 물론 다양한 열대어를 관찰할 수 있는 아쿠아리엄을 모두 둘러볼 수 있어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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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처럼 혼자 여행 중이라면, 아름다운 흄우드 해변은 치안 상태가 좋아 늦은 오후에 혼자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해변가 옆으로 길게 뻗은 보행자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애견과 산책하거나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친근한 도시(friendly city)’라는 별명처럼, 이들 대부분은 저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낯선 여행객에게 서슴없이 미소를 건넨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이웃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