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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South Africa)

남아공 여행 ⑥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마법 ‘사파리(Safari)’



겁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는 물소떼, 낮은 나무 사이를 누비며 식사에 여념이 없는 기린들, 그리고 졸린 듯 연신 하품을 하고 있는 사자.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Channel) 채널에서 익히 봐왔던 장면들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내가 그들을 구경하는 건지, 그들이 나를 구경하는 건지, 그저 물끄러미 서로를 응시할 뿐, 어느쪽도 이 침묵의 대화를 깨려고 하지 않는다. 잠시 뒤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고개를 돌리는 그들을 보며, 서서히 자연에 동화되는 내 자신을 느낀다. 대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그로 인한 자유. 이것이야말로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마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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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자연과의 위대한 교감 ‘사파리 투어’

어느 여행 전문 서적이나 여행 전문가를 막론하고 아프리카 여행의 백미는 야생동물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사파리 투어(Safari tour)’-혹은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라고도 함-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집트와 피라미드, 프랑스와 에펠탑, 그리고 뉴욕과 자유의 여신상이 하나의 이미지처럼 연결되듯, 초원을 뛰노는 야생동물은 광활한 검은 대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사파리 투어 관광지는 탄자니아(Tanzania)의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과 남아공의 크루거 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이다. 따라서 이번 남아공 여행에서 크루거 국립공원이 하일라이트가 될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요하네스버그를 떠나려던 순간, 완전히 어긋난다. 나흘 전까지 매진된 기차표는 버스로 대신한다 하더라도, 일주일 가까이 예약이 차버린 숙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인근 도시인 넬스푸룻(Nelspruit)과 헤이지뷰(Hazyview)에서조차 중급 수준의 호텔도 찾기가 어렵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북쪽으로 7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애도 코끼리 국립공원(Addo Elephant National Park)이다. 물론 크루거 국립공원에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편리한 교통과 숙소,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 그리고 국립공원 인근에 사설 야생동물보호구역(Private Game Reserve)이 많아, 두 곳을 모두 둘러볼 경우 약 5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꽤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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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상품은 ‘애도/스코시아 투어(Addo/Schotia Tour)’. 애도 코끼리 국립공원→점심 식사→스코시아 사설 야생동물보호구역→저녁 식사→야간사파리투어로 이어지는 하루 일정에는 무료 픽업부터 2끼 식사(점심, 저녁), 음료수, 그리고 운전사 외 가이드겸 레인저(Ranger)가 포함돼 있으며, 총 경비는 성인 기준 800란드(약 12만원)이다. 특히 별도의 팁을 제공할 필요가 없어 추가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처럼 일정과 내용이 알찬 것도 이 상품을 선택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숙소에서 만난 여행객들이 강력하게 추천을 한 게 결정적이었다.

◆ 아프리카 코끼리의 낙원 ‘애도 코끼리 국립공원’

투어 당일 오전 8시경, 4륜 구동 오픈 랜드로버(Open Land Rover)가 숙소로 들어선다. 우리 팀의 총 인원은 나를 포함해 운전사, 레인저인 크리스(Chris), 그리고 캐나다에서 온 케이트(Kate)와 세라(Sara), 이렇게 다섯 명이 전부다. 북적거리는 대형 지프를 기대했던 내게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랜드로버는 내가 탑승하자마자 곧바로 애도 코끼리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40여분 뒤 국립공원 사무실에 도착해, 두어장의 서류에 서명하고, ‘새콤한 향의 과일 종류는 반입할 수 없다’는 식의 주의사항을 듣고 나서야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다.

투어는 별도의 정해진 루트가 없다. 랜드로버로 달리면서, 그 곳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말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레이다에 포착된 동물은 흑맷돼지(Warthog) 한 쌍.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크리스는 이 곳에서는 너무 흔한 동물이라 하루 종일 여러 차례 목격할 거라면서 무심히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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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아무런 소득 없이 달리던 차가 멈춘 곳은 사방이 확 트인 언덕 둔치. 크리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무려 20여마리의 아프리카 코끼리 떼가 모여 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냐고 묻자, 크리스는 한 두 마리면 몰라도 20여마리라면 더 이상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대신 공원 안으로 더 들어가면 이 거대한 초식동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보다 많아질 거라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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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아프리카 코끼리를 찾아 가는 길에 또 다시 흑맷돼지와 마주친다.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두 마리의 흑맷돼지는 덤불 옆 조그만 웅덩이에서 진흙목욕을 즐기는 중이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레이터 쿠두(Greater Kudu) 한 쌍을 만난다. 낯선 방문자를 경계하며 예의 주시하는 암컷에 비해, 수컷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식사에 여념이 없다. 이런 포유류 외에 장수의 상징인 산거북과 매서운 눈매의 독수리도 발견된다. 그리고 드디어 10여미터 앞에서 홀로 식사중인 아프리카 코끼리와 감격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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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견한 아프리카 코끼리는 5~6세로 추정되는 암컷이다. 이렇게 야생상태에서 사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평균 수명이 무려 60년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어린이인 셈이다. 크리스는 아무리 온순한 어린 코끼리라 할지라도 놀라게 되면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대화를 멈추고, 돌출행동을 자제하라고 당부한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우리가 마음에 들었던지, 랜드로버가 좀 더 가까이 접근한다. 7m, 5m, 이제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위치다. 코끼리는 잠시 우리를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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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시아 사설 야생동물보호구역

아프리카 코끼리와의 근접 조우는 점심 식사 내내 우리의 화제가 됐다. 케이트와 세라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때의 감동을 되새김질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약 2시간여의 점심 시간이 끝나고, 2시 30분경 오후 투어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애도 코끼리 국립공원이 아닌 스코시아 사설 야생동물보호구역이다.

뜨겁게 햇빛이 내리쬐는 초원은 그야말로 초식동물의 천국이다. 한눈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물소과의 누(Blue wildebeest)와 얼룩말은 물론, 쉽게 구분이 가지 않는 솟과의 동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크리스가 하나씩 이름을 말할 때마다 미리 나누어준 동물 목록표에 열심히 체크한다. 영양(antelope), 니알러(Nyala), 부쉬벅(Bushbuck), 일런드(Eland), 워터벅(waterbuck), 리드벅스(Reedbucks), 론 영양(Roan Antelope), 클립스프링어(Klipspringer), 겜즈복(Gemsbok), 임펠라(Impala), 스피링복(Spring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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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그림찾기 같은 솟과 동물 알아맞추기에 진저리를 칠 때쯤, 너무도 매력적인 기린 가족을 발견한다. 한 마리의 숫컷과 두 마리의 암컷, 그리고 두 마리의 새끼로 구성된 이 기린 가족은 활력과 여유가 동시에 느껴진다. 호기심을 갖고 멀뚱멀뚱 우리를 바라보는 어린 기린들의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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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파리 투어의 하일라이트  ‘Tooth & Claw’

기린들의 동작 하나 하나에 미소를 짖고 있던 그 때, 갑자기 크리스의 무전기가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잠시 다른 팀 레인저와 교신중인 모양인데, 순간 크리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보인다. 그가 말한다. “그들이 사자를 찾았어요. 이제 우리도 그 쪽으로 이동할 거에요.” 가는 길에 마주친 원숭이과의 바분(Chacma Baboon)도, 커다란 웅덩이에서 코만 내밀고 있는 하마도, 낮은 덤불 아래 위장 중인 악어도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밀림의 왕 사자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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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을 가로 질러 30분 넘게 달리던 랜드로버가 조금씩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 순간,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사자 한 마리. 크리스는 그의 갈기로 짐작컨대 두어살 안팎의 어린 숫사자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사자는 보통 무리지어 생활하는 만큼 분명 주위 어딘가에 또 다른 암사자들이 있을 것이며, 보통은 랜드로버를 공격하지 않지만 갑작스런 움직임이 포착될 경우 공격할 수도 있으니 절대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특히 무리 중 가장 약한 상대를 공격하는 만큼, 가장 몸집이 작은 케이트는 특히 조심할 것을 재차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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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고 있는 지프는 문이 없는 오픈 랜드로버다. 따라서 사자가 공격한다면, 물론 우리의 레인저인 크리스가 보호해 주겠지만, 우리 역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아무런 장애물 없이 사자를 마주하는 기분은 정말 스릴 그 자체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으로 한기마저 느껴진다. 이 때 크리스가 조용히 속삭인다. “저쪽에 있는 덤불을 보세요. 그 곳에 암사자 한 마리가 쉬고 있어요.”

크리스는 다른 팀 레인저가 또 한 마리의 사자를 발견했다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번에 발견한 사자는 조금은 나이가 들어보이는 암사자다. 근처에 분명 몇 마리의 사자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런 우리와는 달리 암사자는 마치 지루하기라도 하다는 듯 연신 하품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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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돌아오는 길에 다른 팀으로부터 코뿔소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코뿔소 역시 관찰하기 어려운 동물인지라, 저녁 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코뿔소가 목격된 곳으로 이동한다. 귀에 난 상처로 보아 왠지 사연을 많은 것 같은 코뿔소 한 마리가 주위에는 아랑곳 않고 풀을 뜯느라 정신이 없다. 크리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주의를 당부한다. 그에 따르면 코뿔소는 워낙 시력이 좋지 않아, 주위에서 무언가 갑자기 움직이면 곧바로 돌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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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식 저녁식사와 나이트 사파리

이렇게 긴 하루가 끝이 나고, 드디어 신나는 저녁 시간이다. 남아프리카식 야외공간인 ‘라파(lapa)’에서의 저녁은 기대 이상이다. 뷔페식 저녁 식사 메뉴는 흔히 맛볼 수 있는 스테이크와 야채요리는 물론, 남아공 특유의 치킨 캐서로울(chicken casserole)과 말바 푸딩(malva pudding)도 맛볼 수 있다. 제법 쌀쌀해 진 밤공기 탓에 모닥불 주변에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불을 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마다 사파리 투어의 놀라운 경험에 대해 얘기하느라 제법 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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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다 되어서야 크리스는 우리에게 숙소로 향하기 전 나이트 사파리를 가자고 말한다. 해가 사라진 초원은 그야말로 암흑이다. 랜드로버의 라이트와 아주 희미하게 빛나는 별빛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서도 불빛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조그마한 벌레의 울음소리마저도 크게 느껴진다. 우리는 혹시라도 사자가 등장할까 가슴 졸이며 연신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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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랜드로버가 멈추고, 운전석 상단에 부착된 라이트가 풀숲의 조그만 구멍을 비춘다. 크리스는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 곳이 아드울프(aardwolf)라는 하이에나과의 동물이 사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워낙 체구가 작아 사람을 공격할 리 없다는데도, 다시 한번 한기를 느낀다. 문득 영화 올드보이의 대사가 뇌리를 스친다. “상상하지마, 인간의 공포는 상상에서 생겨나는 거야.” <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