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가 들려준 <로마인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이 지금까지와의 여행들과는 달리, 문화 유적 답사적인 성격을 띠게 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특히 로마의 경우 처음부터 관광지나 찾아다니는 식의 루트는 생각지도 않았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갈리아인)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어떻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라는 시오노 나나미의 화두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요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의 로마 여행은 그 발상지인 퀴리날네, 비미날레, 에스퀼리노, 카피톨리노, 팔라티노, 첼리오, 아벤티노 등 해발고도 50미터도 안되는 일곱 개의 언덕을 오르는 일로 시작됐다.
사실 대부분의 유적지는 일곱 언덕 아래의 평지에 있고, 이미 2천800여년의 세월이 지나 이 일곱 언덕도 발상지로서의 흔적조차 남지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로마 여행의 출발은 이 곳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비록 그것이 단지 흙 한 번 밟고 오는 무의미한 루트일지라도.
내가 숙소로 묵고 있던 곳은 떼르미니 역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안되는 곳이다. 비미날레 언덕과 퀴리날레 언덕은 떼르미니 역에서 무척이나 가깝기 때문에 자연스레 첫 번째 코스는 이 두 언덕으로 정해졌다. 떼르미니 역에서 도보로 5분도 채 안되는 레푸블리카 광장은 퀴리날레 언덕과 비미날레 언덕이 맞닿는 곳이어서, 우선 이 곳을 향했다.
가는 길에 잠시 디오클레치아노의 욕장과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을 들러 드디어 도착한 레푸블리카 광장. 기대와는 달리 이 곳에서 바라본 퀴리날레 언덕과 비미날레 언덕은 마치 평지와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시작점이어서가 아닐까 싶어 북쪽에 위치한 퀴리날레 언덕을 먼저 오르기로 맘먹고 북쪽으로 계속해서 걸었다.
퀴리날레 언덕은 훌륭한 그림 소재였던 '사비니족 여인의 강탈(로물루스가 이끄는 로마인이 사비니족 여인들을 강탈해 가정을 이뤘다는 내용으로, 개인적으로 루브르에 있는 다비드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의 당사자인 사비니족이 로마인과의 화평 후 이주한 곳이다. 무려 2천700여년 전부터 사람들이 집단 생활을 했던 유서 깊은 언덕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궁이 중앙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어 역사적 의미를 되씹기는 힘들었다.
비록 로마 시대의 흔적은 느낄 수 없을 지라도, 퀴리날레 언덕에서 르네상스의 흔적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것도 바로크 건축의 양대 산맥이던 베르니니와 보로미니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니, 힘겹게 찾아온 보상치고는 만족스럽다고나 할까?
대통령 궁 옆에 나 있는 퀴리날레 거리를 따라 가다보면 베르니니의 산탄드레아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그 길을 따라 다시 3분쯤 걷고 나면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인들이 그토록 사랑했고, 그 자신 역시 뛰어난 예술 세계를 보여준 베르니니지만, 적어도 퀴리날레 언덕에 세워진 성당만 놓고 본다면 보로미니의 판정승이다. 베르니니의 산탄드레아 성당은 일부러 체크하지 않으면 스쳐지나칠 정도로 수수한 외관이지만,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성당은 외관부터 내부까지 보는 이의 넋을 앗아갈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퀴리날레 언덕에서 비미날레 언덕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언덕을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평지가 계속 이어진다. 혹시라도 지도를 잘 못 살펴본 게 아닐까 싶어 여러 번 뒤적여봤지만, 분명 서 있는 곳이 퀴리날레 언덕과 비미날레 언덕을 나누는 도로가 틀림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퀴리날레 언덕과 비미날레 언덕 사이에 나 있는 도로인 나치오날레 거리는 이탈리아 통일 이후 도시 설계 단계에서 편의를 위해 흙을 메워 평지화시켰다고 한다. 언덕을 오르고자 했던 내가 헛갈려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다.
로마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여타 언덕에 비해 내세울 만한 역사적 사연(?)이 없어서인지 비미날레 언덕은 지금도 조용한 주택가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이 곳에서 눈여겨볼 만한 곳이라고는 언덕 좌측에 세워져 있는 내무부와 언덕 우측에 조성돼 있는 광장이 전부다. 비미날레 광장이라고 불리는 이 곳에는 트레비 분수처럼 족보 있는 분수나 성당조차 없어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한참을 헤매고 다녀 피곤한 다리를 잠시나마 쉴 수 있었다.
비미날레 광장에서 카피톨리노 언덕까지는 제법 길이 먼 거리다. 차라리 에스퀼리노 언덕으로 가는 게 가까울 정도인데, 그래도 원래 계획대로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가기로 맘먹고 베네치아 광장행 버스에 올랐다.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들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는 로마 시내를 돌고 돌아 시야가 확 트이는 베네치아 광장에 도착했지만 카피톨리노 언덕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하얀색 타자기처럼 생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시야에 꽉 들어찬다. 하지만 이미 비미날레 언덕에서 고생(?)을 한 탓인지 카피톨리노 언덕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에 가려져 웅장한 모습을 한 눈에 보기는 어려웠지만 신성한 신전이 모여있던 장소답게 오르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카피톨리노 언덕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놓여 있는 2개의 박물관과 중앙에 위치한 시청(예전에는 로마 원로원으로 사용됐다고 한다)이 전부다. 워낙 평지가 좁아 예전에도 신전을 모셔두는 장소로만 이용됐다는 말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다.
카피톨리노 언덕의 진수는 광장과 박물관이 아니다. 로마의 일곱 언덕 가운데 가장 가파른 곳답게 이 곳에서 바라보는 로마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북서쪽을 바라보면 산 삐에뜨로 성당의 쿠폴라(돔)가 아름답게 빛나고, 남쪽을 보면(누오보 궁전과 콘세르바토리 궁전 사이에 나 있는 지하 통로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면) 포로 로마노가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를 거쳐 팔라티노 언덕으로 향했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엉뚱하게 콜로세움 방향으로 빠지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콜로세움을 먼저 본 뒤 다시 빙 돌아 팔라티노 언덕에 올랐다.
로물루스 건국 신화의 무대이자, 로마 황궁과 원로원들의 고급 주택으로 둘러 쌓여 있었던 이 곳은 포로 로마노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폐허의 모습이었다. 부서진 돌기둥과 무성한 잡초들이 무성의하게 널려 있어 마치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오솔길처럼 나 있는 길들을 따라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아내 리비아가 살던 수수한 저택을 먼저 둘러본 뒤, 도미티아누스 시절 세워졌던 궁전 유적이 있는 남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날씨는 맑았지만 제법 바람이 있는 날이었는데, 덕분에 흙먼지를 온몸에 휘감아야만 했다.
그래도 막상 궁터에 도착하니 흙먼지가 아니라 황사비가 내리더라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 개인을 위한 공간과 공공을 위한 공간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도록 만들어진 궁전의 모습은 비록 폐허처럼 변했지만 여전히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중 스타디움은 단연 눈에 들어오는 장소였다. 팔라티노 언덕의 절반을 차지하는 궁전에서도, 1/3 가량을 차지하는 이 스타디움만큼은 그나마 가장 보존이 잘 돼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스타디움 옆에 나 있는 아치형 소나무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팔라티노 언덕의 마지막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궁이 보인다. 마치 동굴처럼 조그마한 볼트가 땅속으로 뚫려 있는 이 곳에 잠시 머물다, 바로 옆 출구를 통해 대로변으로 나왔다.
대로변 서쪽에 위치한 대전차경기장(치르쿠스 막시무스) 남쪽에는 아벤티노 언덕이 있다. 아벤티노 언덕의 중앙에는 과거 로마의 제 6대 왕이었던 세르비우스가 세웠다는 수렵의 여신 디아나 신전을 기념이라도 하듯 디아나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아는 곳이 이것 뿐이라) 이 곳을 찾아 천천히 둔덕을 오르는데, 키 큰 소나무 숲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테베레 강이 보인다. 로마의 젖줄인 테베레 강은 괴테가 수영을 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멀리서 보는데도 탁한 빛을 띤다.
테베레 강의 유일한 섬인 이졸라 티베리나도 보인다. 아벤티노 언덕에서 본 이 섬은 마치 함선 하나가 강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벤티노 언덕에서는 대전차경기장과 팔라티노 언덕도 한 눈에 들어오는데, 방금 전에 그 곳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감흥이 느껴진다. 한참을 이 곳에 머문 덕분에 결국 디아나 광장을 찾는 일은 포기하고 첼리오 언덕을 향했다.
아벤티노 언덕에서 콜로세움을 향해 걷다보면 우측에 울창한 숲으로 둘러 쌓인 완만한 경사지가 보이는데 그 곳이 바로 첼리오 언덕이다. 이 곳은 로마인이 선조이자 라틴족의 본거지였던 알바롱가와의 전투에서 승리해 알바롱가 시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장소다. 율리우스라는 씨족은 알바롱가의 유력한 가문이었으므로, 첼리오 언덕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인 셈이다.
이러한 역사를 곱씹으며 올라선 첼리오 언덕에는 딱히 알바롱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14세기에 지었다는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Santi Giovanni e Paolo) 성당을 만날 수 있었다.
붉은 빛 벽돌이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그 웅장한 크기 때문에 더더욱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천천히 경관을 감상하며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언덕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소비한 탓에 콜로세움을 감상하는 것조차 잊고 서둘러 에스퀼리노 언덕으로 출발해야만 했다.
팔라티노 언덕, 첼리오 언덕과 함께 콜로세움과 접해 있는 에스퀼리노 언덕은 원래 네로 황제의 도무스 아우레아(황금궁전)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네로 황제의 자살 이후 트라야누스 황제가 그 자리에 목욕탕을 짓는 바람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만약 완성이 됐다면 베르사유 궁전보다 화려했으리라. 특히 이 곳에서는 바티칸 박물관이 자랑하는 '라오콘 군상'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기대감을 잔뜩 안고 올라선 이 곳은 다른 여섯 개의 언덕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트라야누스 욕장이 있었을 법한 지역도 어렴풋한 흔적 뿐 사방이 온통 나무들로 뒤덮여 있다. 결국 지도를 뒤적이다가 에스퀼리노 언덕에 있다는 유명한 성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완만한 경사지를 따라 북서쪽 주택가로 내려오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성당이 바로 산 삐에뜨로 인 빈콜리 성당이다. 성 베드로의 쇠사슬로 유명한 이 성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모세 석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이 곳을 찾은 시각은 대략 7시 30분쯤. 이미 성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역시 문이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 '눈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이 성당은 여타 성당들과는 달리 유난히 많은 열주가 눈에 띄었다. 그 중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사실 로마의 일곱 언덕을 하루에 모두 밟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충분히 역사를 느끼며 천천히 둘러보겠다던 다짐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마지막 코스였던 첼리오 언덕과 에스퀼리노 언덕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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