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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Portugal)

포르투갈 여행 ① 새로운 발견의 시대를 여는 '리스본'


르투갈과 스페인은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만큼이나 매우 이질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수 천 년에 걸쳐 서로의 역사에 영향을 미쳐 왔기에 전혀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두 나라를 모두 가본 사람이라면 그 미묘한 차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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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열적이고 과시적인 느낌의 ‘플라멩코(Flamenco)’와 애절하고 자기성찰적인 분위기의 ‘파두(Fado)’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고, 따뜻하고 교태로운 ‘지중해’와 거칠고 도전적인 ‘대서양’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포르투갈 여행의 첫 번째 도시인 ‘리스본’의 첫인상은 왠지 모르게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연상시켰다. 현대적인 도시 풍경도 그렇고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첫인상’일 뿐, 하루가 지나자 슬슬 그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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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가 정열적이고 느긋한 느낌이라면, 리스본은 이성적이고 차가운 느낌이다. 물론 도심 곳곳을 연결하는 오래된 트램처럼 정겨운 풍경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곳에서는 여유나 따사로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늘상 바쁘게 걸었고, 가끔 눈길이 마주쳐도 그 흔한 인사를 건네는 적이 없었다. 길을 묻거나 물건을 살 때가 되어서야 겨우 답변을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본은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다. 사람들은 경계심이 많고, 1755년의 대지진이 도시 대부분을 파괴했다고는 해도, 3,0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고도(古都)는 여전히 사람 냄새와 옛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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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지진은 이 오래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게 확실하다. 대지진 이후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은 도시 곳곳에서 생활의 편의와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동시에 대지진을 이겨낸 옛 건물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덕분에 현재의 리스본은 그 어느 도시보다 옛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이다.

◆ 3,000년 고도(古都)의 향기

포르투갈 여행의 시작점으로 선택된 곳은 대지진 이후 1886년에 건축된 산타 아폴로니아(Santa Apolonia) 역이다. 사실 시내 중심에 있는 로씨오(Rossio) 광장이 출발지로는 더 적합했지만(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도 로씨오 광장 뒤였다), 전날 가이드북을 잃어버려 산타 아폴로니아 역 내의 여행 안내소에서 시내 지도를 하나 구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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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비가 올듯 말듯한 날씨가 계속돼서인지 사람들 표정도 밝지 않다. 다행히 일찍 문을 연 여행 안내소에서 지도(차라리 광고 전단지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지도)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8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각이라 여행을 시작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시내를 걷는다. 옆으로 흐르는 테조강(Rio Tejo)을 감상하며 첫 번째 목적지인 코메르시오 광장(Praa do Comercio)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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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르시오 광장은 테조 강에 맞닿아 있는데다가 대지진 이후 새롭게 조성된 바이샤(Baixa) 지구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로씨오 광장과 더불어 출발지로는 그만이다.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바이샤 지구로 들어선다. 이 곳의 건물과 거리는 자로 잰 듯 반듯하다. 건물 1층에 자리잡은 식당과 상점들도 이제 막 오픈한 것처럼 청결하고 단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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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쇼핑의 명소답게 제법 관광객들이 많다. 그들 사이에 섞여서 이리 저리 걷다 보니 허기가 느껴 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카페를 찾아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도로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에 앉아 또 다른 관광객들을 바라본다.

바이샤 지구를 오가는 사람들은 노부부와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 중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건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독일인들이었다. 3명의 어른과 2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그들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생맥주를 즐기고 있었는데, 놀라운 건 2명의 어린이들까지 맥주잔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인에게 맥주는 과연 “음료수”에 불과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탐험을 위해 버스에 오른다. 내가 오른 버스는 코메르시오 광장을 출발해 로씨오 광장으로 향하는 노선이다.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정류장을 체크하고 있었건만, 버스는 벌써 로씨오 광장을 지나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Praca dos Restauradores)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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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씨오 광장 북서쪽에 있는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은 좌우로 차도가 감싸고 있는 길쭉한 송편 모양이다. 광장 중앙에 오벨리스크가 하나 세워져 있을 뿐, 잠시 쉬어갈 벤치도, 나무 그늘도 없다. 어차피 이 곳을 들를 생각이 없었기에 로씨오 광장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저 멀리 언덕처럼 보이는 ‘녹지’가 시선을 끈다. 지도를 꺼내 위치를 살펴보니 그 곳은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에두아르도 7세 공원(Parque Eduardo VII)이다.

굳이 로씨오 광장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 에두아르도 7세 공원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에서 에두아르도 7세 공원까지는 제법 거리가 된다. 그러나 천천히 걷고 싶은 마음에 공원과 직선으로 연결된 리베르다데 대로(Avenida de Liberdade)로 곧장 들어선다. 한치의 비틀림 없이 곧게 뻗은 리베르다데 대로는 과연 ‘리스본의 중심 도로’라는 명칭에 걸맞게 그 폭이 90미터에 이르고, 전체 길이가 무려 1.2Km에 달한다. 덕분에 생각보다 한참을 더 걸어야만 했다.

리베르다데 대로 끝에 위치한 동그란 모양의 폼발 후작 광장(Praca Marpuess de Pombal)을 지나 곧장 에두아르도 7세 공원으로 들어섰다. 기대와는 달리 이 길쭉한 공원은 단정하게 정리된 잔디와 단조로운 패턴의 묘목으로 장식된 정원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오르막 언덕에 위치해 있어 산책을 즐기기에도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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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마음에 들었던 건 공원 최상단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제법 근사했기 때문이다. 낮은 언덕이라 시내 전체가 시야에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테조강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리스본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잠시 이 곳에 앉아 이 낯선 도시를 천천히 바라본다.

◆ 유네스코가 선택한 리스본의 보물 '제로니모스 수도원'

예정에 없던 에두아르도 7세 공원을 찾은 탓에 일정이 어긋나긴 했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다시 계획대로 리스본의 남서쪽으로 향한다. 내가 리스본에 와야 했던 유일한 이유인 ‘제로니모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을 가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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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498년에 마누엘 1세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그 후 1755년 리스본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도 거의 파괴되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몰라도 좋다. 이 놀라운 건축물을 바라보는 순간 떠오르는 건 오직 ‘아름다움’ 그것 하나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본다면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로마시대의 바실리카를 원형으로 하는 르네상스 양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바실리카 2개가 중앙의 4엽형 공간을 중심으로 병렬로 연결돼 있으며, 8각형 탑을 안고 있는 본당 뒤로는 성소(성직자를 위한 공간)를 연결시켜 매우 드라마틱한 구성을 이뤄내고 있다. 내부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3랑식 구조로 나이브와 아일은 아케이드로 구획돼 있으며, 재단 뒤로 앱스를 배치한 것은 르네상스 양식의 그것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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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전부라면 굳이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 이런 모습의 건축물은 유럽 전역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수도원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위에 덧씌워진 고딕양식과 이 지역 특유의 건축 양식(무어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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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첨탑과 길쭉한 창문, 그리고 건물 외부(특히 입구와 창문)를 장식한 화려한 조각들은 고딕 양식 특유의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르네상스 양식에서 느껴지는 부족한 장식미를 충분히 보완한다. 그리고 건물 외벽의 프리즈 위를 장식하고 있는 기하학적 패턴과 건물 내부의 원주마다 세심하게 처리된 조각들은 앞선 두 가지 양식이 갖지 못한 제로니모스 수도원만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위대한 걸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건물을 구성하는 벽돌 하나, 조각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몇 번씩 건물을 돌고 또 돈다. 결국 비가 내려 조금씩 거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해서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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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포르투갈 해외개척의 선구자 ‘엔리케 왕자’를 기념하는 발견 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가 있다. 새로운 대륙을 향해 출정하는 범선에 엔리케 왕자를 비롯해,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등 그 시대 주역들을 새겨 놓은 이 기념비는 제로니모스 수도원만큼의 감동은 아니더라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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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올라간 기념비의 정상은 그저 대여섯평 남짓한 공간에 아무런 구조물, 그 흔한 망원경조차 없이 그저 시멘트를 발라 놓은 바닥이 전부다. 그러나 한눈에 들어오는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테조강변의 평화로운 풍경은 그 지루함을 날리기에 충분하다. 특히 기념비 앞에 새겨진 세계지도-남아공정부가 희망봉 발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선물했다는-에서 우리 나라를 찾아보는 것도 유쾌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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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 도보 5분 거리에는 벨렘의 탑(Torre de Belem)이 있다. 이 탑은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자,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비록 제로니모스 수도원에 비해 지극히 평범하고 단조로운 느낌이지만, 이 곳이 과거 군사건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법 근사한 편이다. 특히 이 건물의 지하는 19세기 초까지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한 감옥으로 사용된 바 있는데, 밀물과 썰물에 따라 탑이 잠겼다 떠올랐다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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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여정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해가 일찍 지는 모양이다.

사실 가고 싶은 곳들이야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이 날은 제로니모스 수도원 하나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기에 무리한 일정보다는 버스에 올라 시내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버스는 1755년 9만명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리스본 대지진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건물들이 몰려 있는 지역을 통과해 폼발 후작 광장,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을 거쳐 로씨오 광장에 도착한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 탓에 조금은 일찍 숙소로 돌아간다. 이 날 밤 리스본은 엄청난 폭우와 돌풍으로 밤새도록 싸이렌이 그치지 않았다. <혁>